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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대회 후기] 있는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경기란 이런것이었다

 

- 참가자 : 스머프

 

개인적으로 나는 단체 스포츠와 별로 친숙하지 않다. 아니 사실상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 어린 시절 학교 점심 시간에 축구를 하긴 했지만 금방 그만두었다. 당시 나는 또래 남자 아이들 집단에 질려 있었고, 축구는 그 문화의 연장이었다. 누가 주도적으로 공을 차고 누구에게 주로 패스를 해야하는 가는 암묵적인 서열에 따라 정해져 있었고, 종종 경쟁은 과격해지곤 했다. 나는 어느 순간 교실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고, 대학에 가서는 운동부가 아니라 학회에 가입했다. 단체 생활도 세미나와 강좌의 연속이었고 운동회를 하긴 했지만 사실 야유회에 더 가까운 분위기였다.

 

 

그러다 나는 몇 년전 부터 수영을 시작했고, 몸을 움직이는 것의 재미를 뒤늦게 경험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좋은 걸 새로 발견하면 나누고 싶기 마련이다. 물론 수영장에선 여러 사람이 함께 수업을 듣지만, 대부분의 생활 체육이 그렇듯 강습생들은 서로 이야기는 커녕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내가 새로운 영법을 배우고, 레인을 끝까지 돌아도 지인들은 그냥 ‘그랬구나’하는 반응이었다. 말하자면 수영장에서의 나의 성취는 정말 나만의 것이었다. 그러다 하루는 경기에서 승리한 뒤 서로 부둥켜 기쁨을 나누는 선수들의 영상을 스쳐가듯 보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내가 유년 시절 등을 돌리고 떠나간 운동장에서, 그 친구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떤 것을 경험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던 찰나, ‘<프라이드 하우스 배 볼링대회> 컬링 대신 볼링’의 개최 소식이 들려왔다. 취지가 좋은 행사이니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프라이드 하우스는 올림픽 기간 동안 성소수자 선수나 코치, 관객들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드러내고 환영 받으며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다. 2010년 캐나다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여러 국제 대회가 열리는 곳에서 프라이드 하우스가 운영되었다. 그리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 프라이드 하우스를 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번 볼링 대회는 이 같은 사업의 일부로 개최되었다.

내가 너무나도 지지하는 사업을 기념하는 자리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니, 거기다가 마침 내가 목말라했던 스포츠 경기라니 나는 호기롭게 참가를 신청했다. 여기에 더해 나는 단 한 번이지만 볼링에 대해 무척이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친구들과 볼링장을 찾았을 때, 나는 함께간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점수를 기록하고 신나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너무 볼링을 잘 쳐서 초보가 아니라는 의심을 받을까 엉뚱한 걱정을 했지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우선 그 날 함께했던 친구들의 운동 능력은 심지어 나보다도 현저히 낮았다는 것. 그리고 그 날 나는 술에 살짝 취해 있었기에, 내 기억은 다분히 왜곡되어 있었다는 것.

 

 

 

아무튼 경기 당일, 나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볼링장에 도착했다. 경기장에서는 이미 단체전이 진행중이었고, 공이 볼링핀에 부딪히는 소리 만큼이나 그 열기는 뜨거웠다. 이미 도착한 지인은 어제 유튜브를 보며 연습했다며 내게 공을 던지는 포즈를 보여주었다. 그녀를 따라 몇번 연습을 한 나는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경기를 구경했다. 이윽고 단체전이 종료되었고, 우리는 안내에 따라 초보전 레인으로 이동했다. 이 날 경기는 열 번씩 두 경기, 총 20회로 진행되었는데 처음 공지를 받은 나는 그 정도면 가뿐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후 펼쳐진 고난 속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안일한 생각을 했는지를 깨닫게 되었지만.

그리고 막상 펼쳐진 경기에서, 나는 (당연하지만) 내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른 결과를 맞이했다. 5회에 이르기까지 내 볼링공은 핀을 건드리기는 커녕 레인 옆으로 빠지기 일수였다.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한채윤 선생님은 내게 다가와 친절하게 하나하나 포즈를 알려주었지만 몸은 생각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던 사이 어제 밤까지 자세를 연습했다던 내 동료는 핀을 모두 넘기다 결국 스트라이크까지 기록했고, 나는 머릿 속으로 가장 기본적인 스포츠 정신은 겸손이 아니었을까 후회했다. 그리하여 자세에 대한 조언은 스텝은 생략하고 레인 바로 앞에서 공을 굴리는 것으로, 공의 무게는 보다 가벼운 것을 고르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나를 아는 모두가 염려했지만 혼자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문제는 발생했다. 바로 체력이었다. 20회라는 숫자 앞에서 코웃음을 쳤던 나는 이미 7번째 공을 던지고 소파에 널부러졌다. 나는 농담반 진담반 기권을 요청했지만, 내가 중도에 포기한다면 경기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것이 가능할리 만무했다. 그리하여 볼링공이 나를 굴리는지 내가 볼링공을 굴리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고, 마침 경기장에 방문한 권김현영 선생님께 응원의 인사를 받았지만 내 입에서는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선생님 저 정말 죽을것 같아요. 20회는 진짜 할 일이 못되는 것 같아요.’

 

사실 이렇게만 들으면 이 날의 경기가 ‘예상치 못한 고행’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물론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경험은 또 있었다. 함께 레인에 배정된 다른 참가자들의 반응이었다. 이 분들은 경기에서 뒤쳐지는 다른 선수들을 격려하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며 사람들을 이끌어 주었다. 참고로 나는 공이 자꾸 왼쪽으로 가니 아예 오른쪽 끝에서 던지는 것이 어떻겠냐는 코치를 받았고, 이후 놀랍게도 점수라는 것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레인에 있던 사람들은 내가 점수를 내자 정말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나는 이 같은 응원과 지지에 힘입어 경기에 즐겁게 참여했다. 그리고 마침내 첫 스트라이크를 기록하는 기적이 이루어 졌을때, 레인의 분위기는 거의 단체전에 우승한 것과 같았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한 경험이었다. 내가 참가한 초보전은 참가자들이 순위를 놓고 경쟁을 펼치는 개인전이었고, 우리는 잠재적 경쟁자들이었다. 하지만 개인전 내내 우리는 마치 하나의 팀처럼 움직였다. 서로가 서로를 코치하고, 그래서 더 좋은 점수를 받도록 도왔다.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도, 서로가 좋은 점수를 낼 때마다 기뻐해주고 하이 파이브를 나누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꼴찌가 되었고(하지만 꼴찌상을 받았다. 중요한 교훈. 이왕 망할거라면 확실하게 망하는게 낫다.) 순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하나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함께 경기에 참여한 사람들을 응원하고, 다른 참가자들이 나의 성장에 기뻐해주던 순간의 감정들은 다른 어떤 상품들 보다도 내게 값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너무나도 궁금해 했던 그 감정, 내가 유년 시절 떠난 운동장에서 또래들이 했던 그 경험은 어쩌면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하고. 아니 그것보다 더 좋았다. 그날 경기에서, 우리는 서로를 단순히 경쟁하고 앞질러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볼링에 임하고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으로 여겼으니까. 그리고 진심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각자의 성과에 대해 기뻐하고, 스포츠로서 볼링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경기장을 등지는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나 집단에서 차별받고 배제되기 일수인 사람들은 단체 스포츠에 참여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숨긴채 경기에 참여하고, 동료들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필요한 괴로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성적지향이나 자신의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스포츠가 주는 감동과 경험을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며 누리길 바란다. 내가 그날 볼링 대회에서 느낀 감정을 평등하게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나는 이 경기를 주최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프라이드 하우스가 이러한 바램을 실현시킬 공간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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